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파인만 (문단 편집) == 애처가에서 카사노바로 == [[파일:리처드 파인만&알린 그린바움.jpg]] 결혼은 여러 번 했지만, 처음 결혼했던 부인 알린 외의 부인들에 관해서는 비중있게 언급되지 않는다. 첫 아내인 알린은 16살 때부터 파티장에서 만나 사귀었고 대학교 즈음에 결혼했지만, 학사 과정을 밟는 나이 때쯤 로스 알라모스에서 일할 때쯤에 [[결핵|폐결핵]]으로 사별했다.[* 이때 의사들의 바보짓이 <남이야 뭐라 하건!>에 잘 나와 있다.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자는 결심을 다지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파인만이 아내의 사망을 확인하러 가기 위해 평상시 알고 지내던 로스 알라모스의 어느 직원의 차를 빌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직원의 정체가 '''[[소련]]의 [[스파이]]인 [[클라우스 푹스]]'''였다고 한다.] 여동생인 조앤 파인만의 진술에 따르면, 결혼할 때에 알린이 폐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파인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병이 전염될 것을 우려한 파인만의 어머니가 결혼을 거세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결혼에 골인했으나 끝내는 사별했으니, 파인만이 유독 슬퍼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때 남들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내는 죽었어. 자, 일이나 하자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변 사람들 역시 파인만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라는 걸 깨달은 뒤 그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사망 한 달 후 옷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진열되어 있는 옷 중 하나를 보고 '알린이 저 옷을 좋아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길거리에서부터 집에 갈 때까지 미친듯이 울었다고 한다. > (…) I have met many girls and very nice ones and I don’t want to remain alone — but in two or three meetings they all seem ashes. You only are left to me. You are real. > (전략) 난 여러 여자를 만났고 그 중에는 멋진 아가씨들도 있었지. 나도 계속 혼자이고 싶은 건 아냐. 하지만 두세 번 만나면 다들 [[재]]가 돼 사라지는 것 같아. 내게는 당신만이 남아 있어. 당신만이 진짜야. > (중략) > PS Please excuse my not mailing this — but I don’t know your new address. > 추신.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한 걸 용서해 줘. 하지만 난 [[사후세계|당신의 새 주소]]를 알지 못하는걸. >---- >아내가 죽고 16개월 뒤, 1946년 10월 17일에 쓴 편지 그 반동인지 아내 사망 후에는 물리학계의 [[카사노바]]로 진화했다.[* 사실 안 알려져서 그렇지 [[너드]]처럼 보이는 학자들 중 카사노바가 꽤 있는 편이다. 일단 '학자 = 너드'는 아닌 데다가 다들 머리도 좋고 지적인 이미지에 말빨을 갖추게 되면 대표적으로 이 분야의 전설인 [[에르빈 슈뢰딩거]]가 있다. 해당 항목 참고. [[리처드 도킨스]]와 [[칼 세이건]]의 여성 편력 역시 유명하다.] 본인이 스스로 인증했을 정도다. [[술집]]과 [[카지노]]에서 [[라스베가스]]의 유명 선수와 어떻게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그가 여성을 꼬시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전수해줘서 그걸 몇 번 써 먹었다고 한다. 비결은 별거 없고, 그냥 나쁜 남자가 되라는 것인데, 절대로 같이 자기 전에는 밥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말고, 영화표도 사주지 말고, 뭐 해달라고 해도 거절하면, 너와 잘 거고 그 다음은 니가 알아서 하세요 식 조언. 사실 아래에도 나와있지만 진짜 있던 일인지도 의심스러운 일화이고, 진짜 있던 일이라 하더라도 파인만의 잘생긴 외모와 사회적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여자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했던 조언이라는 추정도 있다. 파인만의 끊임없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에게 다가간다면 정말로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운 일화이므로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나중에 남부 여성에게도 한 번 써먹은 뒤 자신과는 안 맞아서 그만 뒀다고 하지만 12명 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 받았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다. 뭐 그런데 저 라스베가스에서 선수에게 사사한 일화는 조금 의심스럽기도 한 게[* 물론 파인만이 거짓말을 했다기보다 친구들에게 허풍이나 과장을 좀 했을 수도] 사진을 보고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잘생긴 외모와 유머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여자 꼬시는 데에 굳이 선수의 가르침까지 얻을 정도로 쑥맥이지는 않았다. 여하간 일단 라스베가스로 여름휴가를 매번 떠나거나 토플리스 댄스 클럽( 한마디로 [[스트립]] 클럽)에 자주 가는 등 호색한이 아닐까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단, 토플리스 클럽 출입은 세 번째 아내에게 허락받은 일이었고 아내는 오히려 '''너드가 사람같이 살려는구나라는 생각에서 좋아했다'''고 하지만, 물론 본인 주장이다.] 그를 존경하는 로렌스 크라우스가 쓴 퀀텀맨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술과 섹스에 탐닉했다'라고 묘사하기까지 한다. 여하튼 간에 여자 좋아한 건 사실인 듯. 두 번째 아내 메리 루이스 벨과는 결혼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파인만 스스로 '사람이 외로워지면,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그리워지고, 그 사람을 만나서 몇 번 만남을 가지고 잠을 자고 하다 보면 명백히 성격이 안 맞고 오래 갈 수 없다는 게 분명해도 이 사람과 사는 게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그녀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라고 말한 걸 보면 어지간히 성격이 안 맞았던 모양이다. 메리 루이스 벨의 이혼 소송 중 발언도 재미있는데 '그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계산을 시작하고, 차를 몰면서도 계산하고, 거실에 앉아 있을 때도, 침대에서도 계산한다' 라는 말이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당혹스러운 일화는 1954년 [[엔리코 페르미]]가 죽은 직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있었다. 시카고 대학교는 마침 빈 교수자리를 캘텍의 파인만으로 채우려고 엄청난 급여를 제안했다.[* 역시 로스 앨러모스에서 알게 된 여성 과학자 리오나 우즈(Leona Woods, 링크에서는 리오나 마셜로 등장[[http://www.nndb.com/people/280/000225602/|#]])의 제안이다.] 하지만 파인만은 이렇게 쿨하게 답했다. > "그 돈이면 저는 멋진 정부를 하나 얻어서 [[아파트]]랑 비싼 물건도 살 수 있겠군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합니다. 밖에선 그 여자를 생각하고 집에서는 아내와 다투겠죠. 그럼 저는 당연히 불행해질 테고, 물리 연구는 전혀 못 하게 되겠죠.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겁니다." 처음엔 파인만의 순애보나 성실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일화가 전혀 다르게 읽히는 걸 볼 수 있다. 여하간 아내에겐 비밀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카고 대학의 오퍼를 거절한 일화를 당시 부인에 대한 순애보로 해석하는 것은 앞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오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파인만은 시카고 대학에서 페르미의 자리를 이어가 주기를 요청받은 것인데, 파인만이 이걸 하기 싫어서 거절하면서 그냥 재치있는 농담을 했던 것뿐이다. 미국에서도 저 정도 좋은 오퍼(손꼽히는 명문대 정교수 자리, 엄청 높은 연봉)를 거절하려면 그 이유를 정중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속마음을 밝히기 싫었던 파인만이 평소 스타일 대로 저런 개그성 발언으로 이유를 대신했던 것이다. 파인만이 페르미의 후임 자리를 거절한 이유를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그의 성향으로부터 유추할 수는 있다. 아마도 첫 번째 이유는 날씨 탓일 것이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에 보면 코넬 교수 시절에 추운 날씨 때문에 애를 먹다가 다른 날씨 좋은 지역의 대학 교수 자리를 찾아 옮긴 이야기가 나오는데 [* 그게 바로 평생 봉직했던 캘텍이다. 캘텍은 로스 앤젤레스 근처에 있어서 다른 건 몰라도 날씨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좋은 곳이다.], 시카고는 코넬대 있는 북부 뉴욕 주 저리가라할 정도로 겨울에 춥고 날씨가 안 좋기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기 때문. 두 번째 이유는 시카고에서 오퍼했던 자리가 그냥 단순히 돈많이 주는 교수 1명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페르미는 시카고 대학 물리학과에서 단순히 유명한 교수 하나가 아니었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지도하고 후배 교수들을 이끌어서 하나의 학파를 형성한 리더였다.[* 시카고대 경제학과에서 프리드먼 교수가 시카고 학파를 이끌었던 것이나 물리 분야에서 오펜하이머가 버클리 대학을 기반으로 제자를 많이 키워 학파를 형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즉, 시카고 대학은 이런 페르미의 역할을 이어받아 달라고 그 많은 보수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파인만은 일생에 걸쳐 제자를 여럿 키워내거나 학파를 형성하는데 무관심했던 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스타일이었다. 이론물리학자들 가운데 이런 스타일이 꽤 있다.] 따라서 파인만은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시카고대가 기대하는 역할을 자신은 할 수 없다 또는 하기 싫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꽤 높다. (더구나 이 오퍼가 왔을 때 파인만은 연구가 잘 안되어 의기소침해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거절했던 것이다. 파인만의 성향으로 봤을 때 어디 날씨 좋고 놀기 좋은 곳의 대학에서 "우리 대학에 와서 아무 것도 안 해도 좋으니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름값만 빛내 주십시오. 그래도 연봉은 왕창 드리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면 응했을 가능성도 높다. 연봉 많이 받으면 정부를 들이고 어쩌구 하는 소리는 그냥 우스개 핑계인데 이걸 당시 아내에 대한 순애로 해석하는 것은 개그를 다큐로 해석하는 오류다. 결국 [[스위스]]에서 세 번째 아내를 맞았다. 미국에 와서 가정부 해주면 돈 좀 주겠다고 했단다. 마침 세계여행을 계획 중이던 귀네스 하워드는 솔깃한 제의에 혹했고, 그것에 낚여서 가정부 일을 하다 결혼하게 되었다. 처음 왔을 때 옷이 한 가지 종류 밖에 없어서 놀랐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